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기념관 안내

최용신

최용신 1909.08.12 ~ 1935.01.23 최용신 1909.08.12 ~ 1935.01.23

최용신(崔容信)

농촌계몽운동으로 일생을 헌신한 여성 독립운동가, 교육가

최용신은 1909년 함경남도 덕원에서 부친 최창희(崔昌熙)와 모친 김씨 사이에서 23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조부는 사립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을 하였고, 부친은 1927년 신간회 덕원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최용신의 기독교 신앙, 교육가 정신, 민족 사상은 가정에서부터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최용신은 1928년 함경남도 원산의 루씨여고보를 졸업하고 이어 협성여자신학교에 재학하면서 농촌운동에 대한 사명을 갖게 되었다. 1929년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YWCA) 총회 때 협성학생기독교청년회의 대표로서의 참여는 YWCA 농촌계몽사업 실천에 계기가 되었다.

1929년에는 황해도 수안과 강원도 포항 지역에 파견되어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193110YWCA 농촌지도사 자격으로 경기도 수원군 반월면 사리 샘골(천곡 泉谷)에 파견되었다. 최용신은 예배당을 빌려 한글 · 산술 · 재봉 · 수예 · 가사 · 노래 · 성경 등의 학습을 시작하였다. 헌신적 노력으로 강습소를 찾아오는 학생 수가 점차 늘어났고, 1932년에 새로 샘골강습소를 짓기 위해 건축발기회를 조직하였다. 1933115일에는 마을 사람들과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강습소의 낙성식이 이루어졌다.

최용신은 1934년 체계적인 농촌교육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지병인 각기병이 악화되어 6개월 만에 샘골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일제 수탈 강화와 YWCA의 보조금 중단으로 학원의 운영이 어려워지자 최용신은 조선의 부흥은 농촌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라는 호소문을 기고하는 등 샘골강습소 운영의 정상화에 노력을 다 하였다. 강습소 운영이 다시 이루어질 무렵 과로와 지병이 악화되어 결국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강습소를 계속 운영해 달라는 유언에 따라 지역민과 교회, 자원봉사 교사들에 의해 최용신의 뜻이 이어졌다. 해방 이후에는 최용신의 약혼자 김학준에 의해 샘골고등농민학원이 문을 열어 농촌청년을 길러내기도 하였다.

최용신의 삶과 정신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1935)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상록수정신은 최용신의 정신을 상징하였으며, 또한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을 하는 수많은 청년들의 모범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1995년에는 최용신의 활동이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그리고 20051월에는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다.

최용신